작성자
 
김학규
작성일
 
2012/11/12 20:15:38
조회수
1481
글제목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시인 백석
링크
 


 ...초겨울의 길목, 가을의 막바지 즈음에...
  (남신의주 유동마을의 박시봉 이라는 주인집에 세들어 있으면서,
  친구에게 보내는 글이라고 합니다.
  감상해주세요.. 주인장의 직업이 목수인 듯 해요..
  그래서, 한번 더 보게 됩니다.
  결코 신세한탄으로 끝나는 독백이 아님을 눈치채시기 바랍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의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는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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