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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샤갈이 잉크로 그린 '아브라함'입니다.
아주 오래 전의 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는 장면을 한 화가가 그렸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그의 본토와 친척이 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날 것을 결정할 때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아브라함에게 이런 때가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서에 일대기 형식으로 소상하게 쓰여진 그의 인생 여러 고비들이 떠오르는군요.
어려운 때에 아브라함은 이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림은 단순한데
아브라함은 몸을 공처럼 웅크리고 모든 것을 정지, 축소시키고 집중하는 모습이며,
그의 옆에는 유목민의 삶에 필요한 물과 지팡이가 있습니다.
실재로 물과 지팡이가 그의 삶에서 최소한의 필수품으로써
시편의 기자들이 주님을 생명수, 지팡이와 막대기로 비유한 점과 같은 맥락으로 보여지며,
아브라함의 절박한 상황에 함께 하는 작은 소유물들이자
이 땅에서의 삶에 군더더기 없는 인간의 형편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눈은 아래를 향하고 입을 굳게 다물고,
그의 머리, 손과 발이 아무런 행동을 못하고 한 방향으로 나열되듯이 그려졌는데,
무기력하면서도 간절함을 느끼게 하는군요.
이 그림을 보면서 나 자신을 떠올리지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멈추어서 공처럼 웅크리고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정지했던
안으로 침잠하고 집중할 수 밖에 없던 때,
멀리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눈이 가늘어지는 것처럼
보이지않는 하나님을 보려고 내 안의 눈을 가늘게 뜨려고 애쓰던 때 말입니다.
그림의 상단에 그려진 천사는 아브라함과는 대조적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으로 외치며, 모든 몸을 펼치고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역동적인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의 눈에, 우리의 눈에 저 천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저 천사는 보이지않는 현실성이신 하나님과 그 나라입니다.
샤갈은 인간의 형상과 닮은 천사의 모습으로 그 메타포를 제시하였습니다.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실체는 멈추어 있어서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현실성은 운동성이 있으며 그 길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합니다.
천사의 모습에는 그 운동의 방향과
멈추어있는 아브라함에게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힘도 느껴집니다.
그림이 상하로 구분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현실성은 아브라함과 다른 세계를 이루는 것같지만
그를 붙들고 있는 세계이며,
지금의 아브라함을 이끌었고
그 너머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시편기자의 이 고백이 샤갈의 평면에서 공간감을 가지고 표현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정지는 활발한 것이며 보이지않는 운동성이 있어서,
나의 이 때에 하나님의 현실성과 잇닿으려는
웅크림의 정지가 필요함을 느낍니다.
(옮긴 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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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식사진 |
최도영 |
2011/10/18 |
2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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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 - 마크 샤갈 |
김학규 |
2011/10/17 |
2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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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k |
정선옥 |
2011/09/01 |
2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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